말씀요약
지난 몇주동안 하나님과의 사귐이란 큰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런 사귐에 관한 묵상은 참 그 폭이 넓고, 그 깊이가 끝이 없는것 같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어느정도 알면 되지만, 그 사귐으로 들어가고 지속하고 깊어져가는 일은 끝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알고 경험하면 주님계신 그곳에 이를 수 있을가요? 어려운 일이죠. 그럼에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감동으로 그 은혜를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귐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변화와 결과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본문 13절을 보십시요.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아들, 그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믿는다>할 때, 그 느낌이 좀 모호합니다. 많은 경우 지적작용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안다>하는 것은 다릅니다. 믿는 대상을 내가 안다 하면, 그 깊이가 다른 거죠. 특별히 히브리언어에 있어서, 안다는 <헬라어, 기노스코>는 상대방과의 관계와 경험을 통한 체험적이고 인격적인 앎입니다. 그러니 정말 아는 겁니다. 그래서 아는 것는 <야보고>에 의하면, <귀신들도 알고 떠든다>하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그분을 인격적으로,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알아야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온전한사람을 이룰 수 있다.> 그렇게 되어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 수 있다> 말합니다.
또 15절을 보면,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분에게까지 자라가라 말합니다. 멈추지말고 계속해서 성장해가라는 것이죠.
여러분! 멈추면, 죽습니다. 그렇죠. 멈추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전거가 조금이라도, 느리더라도 가야지, 넘추면 넘어지는 거예요.
이세상을 보십시요. 얼마나 많은 유혹과 시험이 많습니까? 우리 영혼을 집어삼키고, 우리의 육신을 망가트리며, 우리가 가진 온갖 귀한 것들을 빼앗아가려는 것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 똑바로 차지고 살지 않으면 다 빼앗겨요.
요즘 그렇잖아요. 스마트폰 버튼한번 잘못누르면 정보 다 털리고, 전화한번 잘못받으면, 통장에 돈 다 날라가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과 차단되어있기 때문에, 공중권세잡은 자가 여전히 가짜임금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죄성이 가짜임금, 악한 영의 지휘에 장단을 맞추어, 나도 모르게 끌려다니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을 바울은 이렇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14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 세상은 사람을 속이는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 온갖 거짓 교훈과 풍조가 가득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분량이 가득한데까지 자라가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풍조에 밀려 떠내려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린아이에 머물지 말고, 자라가라 하는 거죠
어린아이가 왜 어린아이입니까? 아직 옳고 그른 것, 취할것, 버릴 것, 구분을 못해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24시간 줘보십시요. 절제가 안됩니다. 분별도 안됩니다. 온갖 <음란과 폭력, 맘몬의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살 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해야됩니까?
예수님께 붙어있으라 하는 거죠. 예수님이 생명이시기에, 예수님께 꼭 붙어있으면,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꼭 붙어있으면, 닻내린 배처럼,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겁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사람을 살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원리가 작동하게 되는가? 사귐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사귐이 이루어지는데, 어떤 변화를 통해서 세상을 이기는 사람으로 살게 되는가? 그 변화의 영역 두가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1.내면의 존재를 변화시킵니다.
사귐의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의 다스리심이 깊어지면, 하나님을 향한 욕망, 갈망이 커지게 됩니다. 사람의 욕망이란 것이, <총량 분변의 법칙>이 있습니다. 비속어를 써서 죄송하지만, 사춘기 아이들, 한참 말안듣고 속썩일 때 하는 말이 있죠. <지랄 총량의 법칙>... 속썩일만큼 속썩여야 끝난다는 거예요.
우리 욕망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 욕망이 어디로 향하는냐?가 문제지, 항상 욕망은 있는거예요.
우리가 거듭난 이후에도, 이 욕망은 존재합니다. 우리 육신은 뭘 원합니까? 정욕을 따라 살고 싶어합니다. 우리 마음, 혼은 무엇을 원합니까? <너 자신을 위해 살라는 거예요, 이기심을 따라 살도록 합니다>, 우리 영은 무엇을 갈망합니까? 우리 영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것이기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예수님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셨습니다. 그분의 뜻이 아니면 당신 자신의 이기심을 가지고 단 하나라도 당신의 생각과 뜻대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에게 까지 자라가면, 우리의 욕망은, 우리의 갈망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가득차면, 하나님을 향한 욕망이 가장 큰 중심에 놓이면, 나머지 내 혼과 몸의 욕망이 그 안에, 하나님의 욕망안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합니다. 내 속에 두법이 있다는 거예요.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또 다른 법은 죄의 법을 따르는 두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생명의 성령의 법, 그 성령이 자신을 충만하게 다스리도록 자신을 내준 이후에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서 8장의 놀라운 자유와 해방의 선언이예요.
그럼 그렇게 하나님과의 사귐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가는 내면의 변화가 무엇일까요?
1)세상의 헛된 욕망으로부터 자유해집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이루어가다보니,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나를 충만하게 다스려가시게 됩니다. 그렇게 성령님의 욕망이 커지게 되니, 이전에 즐기던 세상 것들이 불편해지는 거예요. 화투장, 카드를 손에 쥔게 불편하고... 인생고민이 찾아올때마다 술친구들을 불러, 독주를 이 몸에 들이키는게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새로운 욕망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욕망을 절제하고 다스려가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빗나간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이 욕망을 통제하도록 해주시는 거에요.
여러분! 이 세상이 중독세상이 되어가는데, 중독에 빠진 사람 의외로 많습니다. 알콜중독, 미코틴중독, 도박중독, 마약중독, 성중독, 게임중독, 스포츠중독 등등, 모든 것을 적당히하고, 과도하게 하지 않아야하는데, 그게 안됩니다.
2)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하는 불안함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쓰고 사는지.. 또 그렇게 애쓰고 살면서도, 왜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지? 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는 자주 헛된 갈망에 빠져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싶은 갈망>,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갈망>.. 그것을 하나님 안에서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귐을 통해, <아! 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미 그분의 위로와 인정, 격려를 충분히 받고 있는 사람이구나>하는 것을 알게되면, 우리가 굳이 헛된 것을 바랄 이유가 없습니다.
3)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의 근원이 <하나님의 분리>에서 온 것이죠. 그래서 첫사람 아담이 죄를 짓고, 두려워서 숨어버렸죠.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된 이후에, 우리는 더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으면, 두려움이 더이상 침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4)내적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서 누리는 내면의 변화 중 하나는 <내적 평안>이예요. 이제는 더이상 외적인 상황에 휘둘려 살지 않습니다. 뭐 조금 맘 상한다고 낙심하지 않고, 뭐 조금 잘됐다고 으쓱대지도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일희 일비하는 삶이 아니라, 그분이 내안에 계시니, 존재감에서 오는 깊은 평안을 누리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사귐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헛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게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하는 욕망, 하나님과의 분리에서 찾아온 온갖 두려움에서 자유케해줍니다. 그리고, 내면의 깊은 평화를 누리게 하는거죠> 그것이 내면의 변화입니다.
그럼 이렇게 만들어진 내면의 변화는 결국 어떤 변화로 이어질까요?
2.존재의 변화는 삶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15절을 볼까요?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가 예수님에게까지 자란다는 것은, 우리 내면의 변화뿐만 아니라, 우리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것을 하여 자라라 하시죠. <행함>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하신 것처럼, 참 믿음은, 진정한 내면의 변화는 삶의 변화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무가 좋으면 열매가 좋다>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죠.
그렇다면 이런 삶의 변화는 어떻게 드러날까요? 세가지 영역에서 생각해본다면,
1)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합니다.
성령의 소욕을 따라,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살아가기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거예요.
2)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깊어지면,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때문에, 사랑이 본질이시고,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을 닮아서, 사랑하며 사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계속해서 더 알아가라고 말씀하는 거예요.
[엡 3:17-19]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도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그 사랑을 알아가길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뭘 알라하는 겁니까?
* 그 사랑의 너비: 너비는 폭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폭을 제한합니다. 사랑의 범위에서 제한된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께는 그 어떤 사람도 제한하지 않으셨습니다. 탕자도, 창녀도, 세리도, 배신자도.. 그 사랑의 너비를 닮으라는 거예요. 여러분! 모든 사람이 우리가 사랑해야할 대상입니다.
* 사랑의 길이: 내 사랑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가? 예수님의 사랑은, 첫사랑, 끝물사랑... 그런거 없어요.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예요. 한결같이 우리를 사랑해주세요. 그 사랑을 닮아가라는 겁니다.
* 사랑의 높이: 높이는 한계죠. 내 사랑에는 한계가 있는가? 한계가 있죠.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습니다. 하늘크기같은 사랑입니다.
* 사랑의 깊이: 깊이는 진실성이죠. 내 사랑은 정말 예수님처럼, 진실하고 진득하고, 진지한 사랑인가?
바울은 모든 면에서 이 사랑을 키워가라 하는 겁니다. 이 사랑 안에서 너의 삶을 터가 박히도록 그 위에 세워가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에게까지 자라간다하는 것은, <뭐 성경지식 더 늘어나고, 종교적인 어떤 행위가 더해지고,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사랑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의 사랑이 날로 자라가길 바랍니다. 15절 다시한번 보세요.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의 사귐을 통해 일어난 삶의 변화는,
3.서로가 하나로 연결된 지체라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하나님과의 사귐은 <모든 관계를 회복> 시켜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른 지체와의 관계를 회복시켜주고, 그것은 더 나아가서, 이 창조세계, 모든 만물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줍니다.
그래서 여기 16절 말씀처럼, 내가 나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다 연결된 자이다라는 것을 알게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과의 사귐이 깊어지면, <내 자아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이 자아라는 감옥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웃, 지체를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고, 다른 생명, 온 우주가운데 존재하는 다른 피조물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점점 내가 그어놓은 선을 걷어내는 거예요. 하나님과 쳐놓은 선, 남들과 쳐놓은 선.. 그래서 예수님 말씀하신 그대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아픔을 함께 느끼고 보듬어 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성장해감으로, 아는 것과 믿는 것, 사는 것이 하나되어, 하나님나라 천국을 더욱 누리시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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