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요약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절기인데, 늘 어린이들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마음은 항상 간직해야 할 마음입니다. 제가 굳이 반복하지 않아도 어린이의 소중함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고, 우리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누구든지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통독 마무리 말씀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지난 목요일로 1월 12일부터 시작된 90일 성경 통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참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고, 말씀해 주시는 은혜와 감동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받은 은혜를 한 줄 나눔으로 마침표를 잘 찍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간 4일 동안의 통독일정은 제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벅찬 감동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히브리서, 베드로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말씀이 그러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는지요? 이 말씀들에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고난과 유혹이 올지라도 끝까지 견디고 인내하여 최후의 승리자가 되라 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 신앙을 장거리 마라톤에 비유합니다. 단거리 100m 경기가 아니라는 것이죠. 마라톤은 매우 힘겨운 싸움입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환경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고,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끊임없이 달리고 또 달려야 하는 경기입니다. 다른 경기는 메달을 딴 선수들이 오로지 주목을 받지만, 그러나 마라톤은 완주하는 자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줍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린 것 자체만으로 박수박을 만한 일이 된 것이죠. 완주하는 것 자체가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에는 1등이 없습니다. 빨리 들어왔다고 그에게만 메달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더딜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세운 공적들을 따진다 하면 물리적으로 여건상 뒤처질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받은 달란트가 다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받은 달란트를 따라 얼마나 신실하고 충성스럽게 믿음의 삶을 살았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지막 주간 통독한 말씀들을 통해서 “믿음의 승리자가 되십시오”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들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보았습니다.
1.성도의 결말은 새 하늘 새 땅에서의 영생입니다.
장차 성도가 누릴 영광은 무엇인가요?왜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의 모든 것을 올인하여 살지 않고 나그네와 순례자인 것처럼 살아갑니까? 아니, 나그네와 순례자 의식을 넘어서 복음 때문에 조롱받고, 헐벗고, 희생하고 양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인내하며 살아갑니까? 여러분,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모든 면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일 때문에 헐벗고 매 맞고 죽임당할 위험에 처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어렵고 힘든 길을 자처하여 걸어갔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고후 4:16-18]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그래서 그는 지금 입고 있는 육신의 몸을, 썩어 해어질 텐트 장막으로 여기고, 이 장막의 집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기에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덧입기를 소원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고백과 삶이 그러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가 안연한 삶을 추구하였더라면 안정된 고향, 아버지의 집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도 이곳저곳 옮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땅에 무너지고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도성을 바라본 것입니다.
성경의 증언을 들어보십시오.
[히 11:8-10]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사도바울이 사모했던 우리가 장차 입게될 영광, 아브라함이 바라보았던 흔들리지 않는 도성, 사도 요한이 경험한 새 하늘 새 땅.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의 구원의 완성을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고린도전서 15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15:51-52]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것이 사망을 이긴 대반전, 역전의 사건입니다.
[고전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육신의 장막이 쇠해짐으로 깊은 잠에 들어갔던 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통하여 사망을 이기고, 썩지 않을 부활의 몸, 생명의 몸을 입게 된다 말씀하십니다.
그 뒤로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천국 입성, 축제입니다. 잔치입니다. 이제 영광을 입게 된 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한자리에 앉아 승리의 축배를 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 하늘 새 땅에서의 영생의 시작입니다.
사도 요한이 바라본 그 나라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계 21:1-4]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거기는 다시 아프지 않습니다. 거기는 다시 싸울 일이 없습니다. 전쟁도 배고픔도 없습니다. 거기서는 다시 죽지 않습니다. 오직 만남과 기쁨과 사랑만이 가득한 곳입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라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 남모를 아픔을 가지고, 장애를 가지고, 연약함을 가지고 살았던 이들이 이제는 더 이상 그 아픔으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이 시대의 크리스천들이 이 하나님 나라를 더 사모하고 열망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천국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어떤이들은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 땅에서의 삶을 너무 회피하는 건 아닌가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 새 하늘 새 땅이 있기에, 그 날을 소망하기에 이 땅에서의 삶을 더 후회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요?
우리의 마음문을 노크하여 문을 연 우리에게 들어오셔서 함께 먹고 마시는 가족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과의 관계는 한 형제가 된 것입니다.
[히 2:11-12]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그렇게 형제로 부르시고,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히 2:14-15]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와 같은 모양을 입으셔서, 친구와 형제로 받아들여주시고, 죽음의 세력잡고 있는 마귀를 멸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마귀를 멸해주셨으니, 한평생 마귀의 종노릇하며 죽기를 두려워하며 살았던 인간들을 그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주신 것이죠.
*제가 지난주간에 새가족심방을 했는데, 이분이 그러더라고요. <마귀가 떠난 것 같습니다> 제가 봐도 그래요. 진짜 마귀가 떠났어요. 옛삶을 청산하고, <사람이 이래변해도되나?>싶을 정도로, 새 피조물로 살게되었습니다.
안그렇겠습니다. 우리안에 죽음을 이기신, 세상을 이기신, 거룩한 영, 예수님의 영, 성령이 들어와계시니, 마귀가 떠나야죠. 별 수 있나요? 할렐루야!
그렇게 우리의 주와 친구, 형제가 되어주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다가 무엇하십니까?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래서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 아버지집에 거할곳이 많으니,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가라 말씀해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새하늘 새땅이 있습니다. 하나님나라 천국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이고, 자녀된 우리는 장차 <새하늘 새땅에 걸맞는 회복된 몸>을 입고, 그 나라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두번째로 생각해볼 것은,
2. 우리는 이 믿음의 경주의 승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마라톤과 같다 하였습니다.
여러분, 마라톤 경기, 42.195km에서 가장 마의 구간이라고 불려지는 코스가 있습니다. 바로 35km에서 38km구간이라 합니다. 이 구간을 지날때면, 심장이 터질 것 같고 허벅지 근육이 찢어질 듯 뭉치고, 머릿속에서는 “이제 그만 뛰어. 이만큼 했으면 충분해”라는 포기의 유혹이 수백번도 더 메아리친다 합니다.
그래서 그 구간을 이겨내야 결승선에 도착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런 완주자, 경기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짐을 벗어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수하라 말씀합니다.
왜 끝까지 그 지옥같은 시련의 구간을 인내하며, 견뎌 가며 달려갈 수 있습니까?
이 싸움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선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인 안에 누가 들어 있을까요? 아브람이 들어 있습니다. 모세가 들어 있습니다. 다윗이 들어 있습니다. 사무엘이 들어 있습니다.앞서간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올림픽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마라톤 경기에서 폐막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관중들이 메인 스타디움에 앉아 있습니다. 그들이 증인입니다. 그거는 2시간 동안 실시간으로 선수들의 뛰는 모습을 바라보며 응원해 줍니다. 박수를 보내 줍니다.그리고 실제로 메인 스타디움에 선수들이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열렬히 환호하며 응원의 박수를 쳐줍니다. 어떤 이들은 기립하여 일어서서 박수칩니다.
그때 그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에 모든 체력은 고갈되어 가지만, 그 쏟아지는 응원 소리를 듣는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엔돌핀이 솟구치며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은 고독한 길이 아닙니다. 아무도 내 눈물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여기십니까?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알아주시고, 앞서간 믿음의 증인들이 우리의 이 믿음의 경주를 힘을 내라고 중보기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따라가는 길은 나 혼자만의 고독하고 외로운 길이 아닙니다. 우리 좌우편을 보십시오.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장을 보십시오. 내 손을 잡아주는 나의 사랑하는 지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에게 승리자가 되기 위해 말씀해 주시는 것은, 바라봄입니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분은 왜 우리를 위해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지옥에서 죄의 저주를 당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까지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운명을 낮은 곳에서 높은 곳까지 다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길입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에게는 새 하늘 새 땅 영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많이 보는 것이 결국 내 방향이요 삶이 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무엇을 바라보고 사십니까? 누구를 바라보고 사십니까?
우리의 삶을 온전케 하시는 분, 우리 신앙의 경주에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그 예수님을 따르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얼마나 교회된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지요.
그가 쓴 요한계시록 2-3장에는 일곱교회에 보내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데, 그건 오늘날 교회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첫사랑을 간직하라는 것이고, 받은 것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이고, 인내로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고, 열심을 내라는 것이고, 차든지 덥든지,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 편지들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이기는 자, 이기는 자, 이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기지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이겨 놓으셨습니다. 죽음까지 이겨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예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는 이기는 자입니다. 이기는 자가 됩니다.
우리의 경주는 혼자만의 경주가 아닙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계시고, 수많은 앞선 선진들이 있습니다. 끝까지 완주하시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최후 승리의 비결은 사랑입니다.
사랑만큼 강력한 이김의 비결은 없습니다. 죄에 빠진 우리 인간을 구원하신 것도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인생의 모든 무게를 다 담아 요한 1, 2, 3서를 통하여 증언합니다.
[요일 4:7-11]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그의 결론을 들어보십시요.
[요일 4:20-21]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우리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것은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도 소망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우리를 승리의 테이프, 신앙경주의 피니시 라인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한분의 통독나눔을 소개하는 것으로 말씀을 마치려합니다.
한분이 이렇게 적었습니다.
성경통독 88일차. 1일차 설램으로 시작한 여정이 히브리서 11장, 이른바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다다랐습니다.
아벨과 에녹, 노아를 지나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모세와 라합… 기드온과 다윗, 사무엘을 거쳐 이름도 빛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증인들의 명단을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봅니다.
수천년전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걸었던 그 낯선 순종의 길은, 이제 88일차를 지나는 나의 평범한 일상의 자리로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며 묵묵히 걸어가는 하루가 결국 나를 본향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가장 세밀한 사랑이자 거룩한 사명임을 고백합니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지만, 그 이름들 곁에서 나의 이름도 조용히 놓아봅니다. 아멘!
저와 여러분의 이름도 거기 아름답게 올려지는 믿음의 완주자, 승리자들이 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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